뇌 노폐물 배출 첫 관문 '지주막 소창' 발견, 치매 치료 새 실마리

뇌척수액이 뇌를 감싼 막을 빠져나가는 미세한 통로가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단장 고규영)이 2026년 7월 22일 국제학술지 셀(Cell)에 온라인 게재한 연구 내용입니다. 연구팀은 홍선표 연구위원 주도로 이 통로에 '지주막 소창(arachnoid fenestration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뇌는 대사 과정에서 끊임없이 노폐물을 만들어냅니다. 이 노폐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아밀로이드 베타 같은 신경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이고, 이는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뇌척수액이 뇌 바깥으로 나가는 첫 번째 출구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연구가 '뇌질환 연구의 새 전기'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뇌척수액이 지주막의 미세한 구멍을 통과해 배출되는 3단계 경로
뇌척수액이 지주막의 미세한 구멍을 통과해 배출되는 3단계 경로


뇌척수액 배출 경로, 왜 250년째 미해결 난제였나?

뇌를 감싼 뇌막에 림프계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뇌막 림프관 자체는 약 250년 전 처음 발견됐다고 합니다. 다만 오랫동안 뇌에는 림프관이 아예 없다고 여겨지다가, 뇌막의 림프계 연결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뇌척수액이 뇌를 둘러싼 3겹의 막 중 하나인 '지주막'을 실제로 어디로 통과해 빠져나가는지는 아무도 명확히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뇌막 림프관의 존재는 알아도, 뇌척수액이 그 관문을 통과하는 실제 지점은 250년 가까이 베일에 싸여 있었던 셈입니다. 2019년과 2024년에도 배출 경로의 일부를 밝힌 선행 연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주막을 실제로 통과하는 미세 구조 자체를 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지주막 소창'이 여는 배출 경로, 영장류에서도 확인

연구팀은 형광 표지 생쥐와 3차원 입체 영상 기술, 주사전자현미경 분석, 형광물질을 이용한 추적 실험을 통해 지주막에 뇌척수액이 빠져나가는 미세한 구멍들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이 구멍이 바로 '지주막 소창'이고, 뇌척수액이 지주막을 벗어나는 첫 관문입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뇌척수액이 이후 어떤 경로를 거쳐 몸 밖으로 이어지는지도 규명했습니다. 지주막 소창을 빠져나온 뇌척수액은 뇌막 림프관을 거친 뒤, 비강(코안) 림프관을 통과해 최종적으로 목 림프절까지 이동합니다. 특히 후각망울의 림프관과 비강 림프관이 '사골판'이라는 뼈를 사이에 두고 바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됐습니다.

지주막 소창에서 목 림프절까지 이어지는 4단계 배출 경로
지주막 소창에서 목 림프절까지 이어지는 4단계 배출 경로

눈여겨볼 대목은 이 구조가 쥐뿐 아니라 영장류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에게도 유사한 배출 경로가 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좁아지는 배출길, 치매와의 연관성

이번 연구는 노화가 이 배출 경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 지주막 소창 자체가 좁아집니다.
  • 주변 뇌막 림프관도 줄어듭니다.
  • 사골판을 통과하는 통로 역시 좁아집니다.

이 세 가지 변화가 겹치면서 뇌척수액 배출 기능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확인됐습니다. 배출 기능 저하는 곧 노폐물 축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노화와 퇴행성 뇌질환 사이의 연결고리를 구조적으로 설명해주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좁아지는 뇌척수액 배출길
나이 들수록 좁아지는 뇌척수액 배출길


좁아진 통로를 다시 넓힌 실험, VEGF-C 유전자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료 가능성을 실험했습니다. 노화한 생쥐의 비강 점막에 림프관 생성을 촉진하는 유전자인 VEGF-C를 투여한 것입니다.

그 결과 비강과 후각망울 주변 림프관이 재생되면서 좁아졌던 배출 경로가 다시 넓어졌습니다. 감소했던 뇌척수액 배출 기능도 젊은 생쥐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이는 향후 코를 통해 약물을 투여하는, 비침습적인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VEGF-C 유전자 투여 전후 노화 생쥐의 림프관 재생 실험 결과
VEGF-C 유전자 투여 전후 노화 생쥐의 림프관 재생 실험 결과


고규영 단장은 이번 성과에 대해 "약 250년 전 뇌막 림프관이 처음 발견된 이후 오랜 난제였던 뇌척수액의 지주막 통과 경로를 명료하게 밝힌 이정표적 성과"라고 밝혔습니다. 홍선표 연구위원도 "영장류에서도 동일한 지주막 소창 구조를 확인함으로써 사람의 뇌 청소 기전을 밝힐 핵심 단서를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에게도 적용될까, 아직은 동물실험 단계

그렇다면 이 발견이 실제 치매 치료로 이어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여기서는 조금 신중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인체 조직을 이용한 연구로 범위를 넓히고,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에 적용 가능한 치료 전략을 개발하며, 비침습적인 코 투여 방식의 약물 치료법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현재까지는 쥐와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단계이고, 인체 적용 시점이나 구체적인 임상시험 계획은 아직 나온 것이 없습니다.

인체 적용을 위한 향후 연구 계획 로드맵
인체 적용을 위한 향후 연구 계획 로드맵


헷갈리기 쉬운 선행 연구, 안면 운동과 뇌척수액 배출

같은 연구팀(고규영 교수)이 이번 발견 이전에 발표한 또 다른 논문도 함께 검색되는데, 이번 Cell 논문이 지주막이라는 '첫 관문'을 다뤘다면, 선행 연구는 안면부 림프관을 통한 뇌척수액 배출 경로를 다룬 별개의 논문(국제학술지 Nature 게재)입니다.

구분 이번 연구 선행 연구
저널 Cell Nature
발표 시점 2026년 7월 22일 2025년 6월 4일
핵심 발견 지주막 소창(뇌척수액이 지주막을 빠져나가는 통로) 안면부 림프관을 통한 뇌척수액 배출 경로


이 선행 연구에서 고규영 교수는 말하기·웃기 등 안면 근육을 자주 움직이는 활동, 가벼운 얼굴 마사지, 음식을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 노래 부르기 등이 얼굴 피부 아래 림프관의 물리적 '펌프' 역할을 도울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다만 고규영 교수 본인도 이 결과가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된 기초 연구인 만큼,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동하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번 지주막 소창 발견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뇌척수액이 빠져나가는 첫 관문을 찾아낸 지금, 다음 과제는 이 통로가 사람 몸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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